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문단 편집) == 해석 == 이 속담은 어떠한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암탉이 꼬끼오하고 우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본 [[미신]]이 그 유래였으며, 기존 질서의 붕괴를 우려하는 뜻에서 나온 것에 가깝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적절한 면이 점점 더 부각되어 현대에 이른 것으로, 오늘날에는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할 속담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집안이 망한다", 즉 국가 멸망의 경우는 따지고 보면 남성 지도자를 끝으로 나라가 망한 경우가 더 많다. 이건 당연히 지도자 성별이 어떻고 간에 인물됨 자체가 글러먹었거나 이미 여러 상황이 종합되어서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고, 거기에 지도자가 남성인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뿐이다. 실제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내에 그득그득 깔린 '나라 막장 테크를 밟게 만든' 남자 [[암군]]들과 [[폭군]]들은 이 속담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안 그랬던 곳이 드물었겠지만, 이 속담이 나온 고대 중원 사회도 남성이 [[권력]]을 장악하고 여성은 권력을 잡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여성이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때 혹은 질서가 다소 무너졌을 때 정도였다.[* 현대 여성계에서는 이를 [[유리절벽]]이라고 표현한다. ] [[비선|남성 군주가 정사에 관심이 없어서 위임했거나]], [[섭정|남성 후계자의 나이가 너무 어렸거나]], [[외척]]의 세력이 강대해서 압박을 통해 이뤄낸 것이거나.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이런 패널티를 극복하고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은 정상적인 질서의 붕괴를 의미함과 동시에,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무기력해서 여성이 권력을 잡는 걸 막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여자가 나서서 엉망이 된 게 아니라, "'''(기존 남성 지도층이) 오죽 일을 못 했으면''' 원래 그런 역할이 아니었던 여자가 나설 정도로 개판을 만들어 놓았냐" 정도에 가깝다. 게다가 이미 이런 혼란한 상황이 벌어진 이상 그 권력자 여성이 제대로 나라를 이끌어 나가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결과만 본다면 여자는 지도자에 적합하지 않다는 단순한 해석을 내리기 쉽다. 무엇보다도 이 당시의 고위층 여성은 타 가문&국가와의 [[정략결혼]]을 위한 핵심요소였는데,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지도자로 등극하기 위한 준비 및 기반 세력이 당대 남성보다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게다가 설령 그럭저럭 나라를 잘 이끌었다 하더라도 진짜 [[성군]]급이 아닌 한은 단점도 있기 마련, 결국 안 그래도 수가 작은 여성 지도자 중에서 훌륭한 지도자는 더더욱 드물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어찌어찌해서 여성 권력자가 나왔더라도 당연히 반대파에서는 성별을 물고 늘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이런 세력을 꺾기 위해서 [[숙청]]을 벌이면 이것도 이것대로 피바람이 불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어서... 결국 중국 및 동양권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성군이라고 합의할만한 여성 지도자가 거의 나오지 못했다. 그나마 나은 예가 [[측천무후]] 등이 있다. 다만, 기록을 보면 마냥 성군은 아니고 단점은 있었다. 특히 백성들은 그럭저럭 살만했지만 지배계층 쪽에서는 그야말로 피바람이 불었다.[* 물론 진짜배기 성군들도 지배계층을 무너뜨리기 위해 피나는 정쟁을 벌였거나, 이미 지배계층이 개발살난 상황에서 여러 업적을 남겼다. 당연히도 기득권층이 없어져야 이들에게 핍박받던 대다수의 국민들이 평안해지고 수많은 개혁을 실시할 근간이 생기므로, 절대다수의 성군이나 [[명군]]들은 기득권층들의 증오를 사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그들에게는 폭군처럼 단호하게 나가야했다. 괜히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는 필요할 때는 한없이 악해질 필요가 있다'''"라고 저서인 [[군주론]]에서 밝힌 게 아니고, [[측천무후]]가 쓸데없이 기득권 세력인 [[관롱집단]]에게 [[악녀]] 소리를 들은 게 아니다.] 그 외에도 북위의 개혁기조를 다진 문명태황태후, [[장거정]]의 개혁을 지지했던 효정태후, 청나라의 통치기반을 안정화한 [[효장태후]] 등의 인물이 있지만, 이들은 사서가 [[효문제]], [[장거정]], [[강희제]] 등의 남성들을 띄워주면서 조연 비슷한 위치로 격하되었고, 요나라를 전성기로 이끈 [[소태후]]도 한족과 원수인 이민족 국가의 지도자여서 인지도가 묻혔다. 설령 국정운영을 잘한 여성 지도자가 나왔어도 "남자들이 밑에서 실무를 잘봐서 그렇다"는 식으로 폄하 당하거나, 아예 공기화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에도 [[신라]]시대에는 3명의 여왕이 있었지만 3명 중 [[선덕여왕]], [[진덕여왕]] 둘은 남성 [[성골]]이 한 명도 없다는 비정상적 상황에 의한 즉위였다. 그리고 마지막 [[진성여왕]]은 실제로 신라가 천년 사직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고려,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실제 사례로 많이 까였으나, 신라 여왕들의 재위기간은 이미 즉위 시점부터 내외부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어 전적으로 개인적 문제라고 탓을 하기 어렵고 그나마 [[고려]] 이후로는 여왕의 즉위가 불가능했다. 중국에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여황제가 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고, 일본에는 여성 [[천황]]이 여러 명 있었으나 대부분은 섭관정치나 [[막부]] 등의 존재로 인해 천황의 실권이 없었다. 서양에도 정쟁에서 상대가 여성임을 들먹이는 이런 식의 [[프로파간다]] 같은 게 없지 않았다. 다만 직접적으로 비슷한 속담은 없었는데 실제로 [[엘리자베스 1세]]와 [[이사벨 1세]], [[예카테리나 2세]]처럼 역사적으로 명군으로 평가받은 [[여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에서는 남성 후계자가 없을 경우 여성이 왕으로 즉위할 수 있는 경우가 [[동아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주 있었던 편이라 여성이 편법이 아닌 정통적인 방식으로 제대로 된 권력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만들어진 논문도 있다.[[http://philos0702.blog.me/5007299172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